장일순 지음, 녹색평론사 펴냄

『나락 한알 속의 우주』는 반독재 투쟁에서 한살림운동의 제창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풀뿌리 민중의 삶에 뿌리를 박고 있었던 우리 시대 생명운동의 스승, 무위당 장일순(張壹淳,  1928~1994)선생의 생전 강연 및 대담을 모아 엮은 책이다.

1997년에 초판이 출간되고 20년이 올해 이전 판에 실리지 않았던 인터뷰와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편집인의 해설이 추가로 수록됐다.

 
무위당 선생은 흔히 교육자, 사회운동가, 서예가, 민주화운동과 한살림운동의 숨은 주역, 생명운동의 스승으로 일컬어지지만 김종철 발생인은 무위당의 생명사상은 단순한 개인적 윤리 차원을 넘어서 진실로 인간적인 사회를 위한 이 시대의 탁월한 '정치사상'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와는 질적으로 다른 민주주의가 시급한 작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관점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락 한알 속의 우주』에는 평생에 걸친 선생의 일관된 사색과 실천의 결과로서의 '생명사상'이 압축돼 있다.

그 핵심은 사람 하나하나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목숨 가지고 태어난 것들은 그 어느 것도 하찮은 미물이라고 여기지 않고, 깊이 주의를 기울여 대하는 일관된 마음과 태도이다.

철저히 민중의 풀뿌리 삶에 뿌리박고 있었던 그가 지향했던 것은 "적어도 만민이 다 평등하게 다 자유롭게 자기 생활을 보호할 수 있는 협동적인 사회"였다. "적어도 하나의 생명단위로 태양과 지구가 있고,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협동적으로 존재할 때만이 생명을 유지한다는 그런 안목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그는 누차 강조했다.

장일순 선생은 종교와 고전을 넘나들며 "사람과 사람 사이만이 아니라 짐승, 벌레, 풀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보완의 관계, 하나의 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이야기하는데, 특히 동학 해월 선생을 많은 곳에서 인용한다.

동학사상을 단지 우리에게 잊혔던 지식의 복원 수준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삶의 실천적 원리로서, 살려냈다는 점에도 장일순 선생의 큰 공로가 있는 지 모른다.

선생은 동학의 한울님의 사상을 사람과 사람, 사람과 생명계의 모든 이웃들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보장하는 생명사상으로 읽어내고, 이것을 현실의 사회생활에 적용해 한살림 공동체운동으로 풀어냈던 것이다.

그리하여 개인적사회적 차원의 혁명조차도 장일순 선생에게 있어서는 '보듬어 안는 것'이었다. 그는 전체가 다 공생해야지, 상대를 없애버리는 해결은 해결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무분별하고 무차별적인 협력(타협)은 아니다.

그는 "용서한다는 것은 같이 공생하려고 할 때의 이야기"라고 분명하게 말하면서, 공생하지 않으려고 하는 상대에 대해서는 비협력 비폭력 노선을 취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이야기 했다. 다만 전심 투구하는 노력 속에서 우리끼리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줄 때 "가졌던 놈들도 다 놓게 될 것"이라고 확언했다.

『나락 한알 속의 우주』는 글을 거의 남기지 않은 장일순 선생의 이 같은 사상을 우리가 가장 가깝게 접할 수 있는 통로이다. 구어체의 말투와 사투리까지 거의 그대로 살린 이 책은 말끔하게 편집, 정리된 문어체의 여타 책과 비교해 반복되는 내용도 있고, 일부 독자에게는 어색하게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무위당 선생의 곡진한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독자는 한 줄 한 줄 단어 하나까지 아껴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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