롭 던 지음, 반니 펴냄

오늘날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부모가 먹던 바나나와 다르다. 1960년대 이후 바나나는 수십 가지 품종에서 단 하나로 표준화되었다.

덕분에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나는 병원체에 절멸당할 위기에 놓였다. 식량도 이와 다르지 않다. 현대 과학은 영원한 풍요로움을 보장하는 듯 보였다.

어떤 과일이든 1년 내내 먹을 수 있으며, 가장 튼튼하고 맛 좋은 품종을 개량하고 복제했다.

 
기업적 식량생산 시스템은 햇빛과 물, 영양소를 식품으로 바꾸는 과정을 완벽에 가깝게 만들었지만 이렇게 만들어낸 작물은 자연의 분노에 너무나 취약해지고 말았다.
 
자연은 늘 이긴다.

<바나나 제국의 몰락>은 우리가 가장 의존하는 작물에 대한 이야기이자 생물의 다양성을 보전하여 식량과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과학자들의 이야기다.

바나나는 신기한 음식이다.

노랗고 달며 껍질은 쉽게 까진다. 맛있고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매력적인 아침 별미다. 하지만 달콤한 바나나 맛 뒤에 흐르는 사연은 복잡한 인류의 역사가 담겨 있다.

1950년대 중앙아메리카는 당시 소비되던 바나나 대부분을 수출했다. 특히 과테말라는 거대 미국 기업 유나이티드프루트사가 운영하는 바나나 농장의 핵심지역이었다.

거대 기업이 바나나 농장을 운영한 방식은 단순했다. 크기와 맛이 똑같은 예측 가능한 작물, 상업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재배하는 것이었다.

꺾꽂이로 번식되는 클론 바나나의 재배 방식은 경제적 관점에서 천재적이었지만 생물학적 관점에서는 최악의 선택이었다. 바나나 하나를 죽일 수 있는 어떤 병원체가 바나나 전체를 다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1890년 시작된 파나마병은 바나나 농장을 휩쓸기 시작했고, 1950년대에 들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인류는 새로운 품종인 캐번디시를 개발해 똑같은 방식으로 대량생산했지만, 이 마처 병균에 감염됐을때 대처할 품종을 개발하지 못했다.
이제 신종 파나마병이 모든 바나나 농장을 삼키고 나면, 우리 식탁에서는 더 이상 바나나를 볼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인간의 욕심이 낳은 이런 사태가 바나나에만 국한된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아직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당장 눈앞에서 버려지는 음식이 더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회의론자들은 식량 부족 사태가 일어나더라도 선진국은 그다지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중앙아메리카, 북아프리카, 중동 같은 ‘그들’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일랜드의 감자 기근이 우리에게 가르친 교훈이 있다. 한 지역에서 작물이 사라지면 전 세계가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농업의 미래는 인류의 미래와 직결된다. 그 농업의 미래가 우리들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

작물을 육종하는 사람들이 지원받도록 투표할 수 있는 게 우리다. 또 거대 기업이 만들어놓은 입맛에서 벗어나 현지의 다양한 품종을 구입할 수 있는 것도 우리다. 소규모 농부들의 전통 방법이야말로 지구에서 생존하는 무한한 생태계와 인류를 제대로 연결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더 간단하게 참여할 수도 있다. 식량을 덜 낭비하면 된다.

고기 소비를 줄이고, 버리는 음식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소소하게 참여할 수 있다. 인류가 해충과 병원체와 벌이는 경주는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 『바나나 제국의 몰락』은 저자 롭 던이 오랜 시간에 걸쳐 수많은 자료와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이뤄낸 역작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것, 자연과의 공존이 인류의 생존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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