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위법 소지, ‘도심 불청객’ 돼 가는중…행안부 개정안에 업계 ‘반발’

난립하는 현수막을 대체하겠다며 도입한 ‘전자게시대’가 오히려 도심을 어지럽히고 있다.

현행법을 무시한 불법 설치로 논란을 빚는가 하면 도시미관을 해치고,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해 교통사고 발생 가능성까지 높이고 있어 ‘도심 불청객’이 돼가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전자게시대는 도입 취지가 무색할 만큼 역기능이 더 많아 보이지만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자세한 내용 파악도 하지 않은 채 기업 애로사항을 개선한다며 그나마 있던 규제까지 풀겠다고 나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전자게시대는 디지털화된 전자현수막으로 무분별하게 난립하는 불법현수막의 폐해를 방지하고, 각 지자체 지정게시대의 현수막 폐기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대안으로 지난 2016년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의 개정(2016.7.7. 시행)을 통해 공식 도입됐다.

지난 2007년 서울 서초구가 최초로 ‘LED 전자현수막 게시대’를 도입한 이래 여러 지자체들의 높은 관심과 함께 법제도를 마련해달라는 요구가 반영된 데 따른 것이다.

전자게시대는 상업지역, 공업지역, 관광단지, 관광특구, 또는 시·도지사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지역에서는 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설치할 수 있다. 그 밖의 설치는 시·도 조례가 정하는 바에 따라야 하며, 어떤 경우라도 생활환경 및 도시미관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전자게시대간의 이격거리는 200m 이상이어야 하며, 광고를 표출하는 면적은 최대 12㎡, 한 변의 길이는 8m 이내로 제한된다.

▲ 서울 서초구 내에 설치돼 있는 전자게시대.

이 같은 전자게시대에는 공공목적 광고와 지역 내 소상공인, 전통시장 상인들이 대상인 광고만 게재할 수 있도록 해 지역경제 활성화와 소상공인을 지원한다는 목적도 겸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현재(2020년 6월 기준) 전국에 설치돼 있는 전자게시대는 123개다. 계속해서 조사를 하고 있지만 최근 들어 지자체의 설치가 급격히 늘며 올해 기준의 숫자 파악은 아직 안 된 상태다.

본지 취재 결과 현재 설치돼 있는 전자게시대는 대부분 교통량이 많거나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역이나 전통시장 입구 등 도심지 교차로에 집중돼 있다.

전자게시대의 주목성과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방편이겠지만 이는 곳곳에 난립하는 불법현수막의 폐해를 방지하겠다는 취지를 충족하기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실제로 전자게시대를 설치한 지자체의 불법 현수막이 눈에 띄게 줄지도 않았을 뿐더러 기존의 ‘현수막 지정 게시대’도 없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전자게시대를 설치·운영하고 있는 지자체들은 효과적 대안이라고 주장할 만한 구체적 성과지표를 산출한 적도 전혀 없다.

전자게시대의 설치 방법도 문제가 있다.

현재 각 지자체들은 의회의 승인을 받아 자체예산을 투입해 전자게시대를 설치하거나 민간투자방식(BTO: Build-Transfer-Operate)의 사업 공모를 통해 업체가 우선 설치하고, 5~10년간 운영한 뒤 기부채납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전자게시대 설치에 따른 필요 예산(1기당 1억5천만원 안팎)을 지자체가 따로 마련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BTO방식을 선호하고 있는데, 이 경우 설치업자에게 특혜를 준다거나 공직자와 유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상시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또 기부채납 이후 지자체가 옥외광고물을 이용한 돈벌이에 나서는 모양새가 된다는 점에서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제6조제3항 ‘국가 등은 재원마련 목적으로 광고물을 설치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규정을 정면으로 위배하게 된다.

무엇보다 현재 설치되고 있는 전자게시대는 몇몇을 제외하고 대부분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이 정한 설치방법, 장소, 광고표출 방법, 광고 대상 범위 등에 반하고 있다.

우선 동 법 시행령 14조 3항 4호에는 교통신호기 30m 이내에는 빛이 점멸하거나 신호등과 같은 색깔을 나타내는 광고물을 설치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아울러 동 법 시행령 14조 3항 3호에는 빛이 점멸하거나 동영상 변화가 있는 광고물을 도로와 잇닿은 장소에 차량의 진행방향 정면으로 표시하는 경우엔 그 광고물의 아랫부분까지의 높이를 지면으로부터 10m이상 띄워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법규정을 제대로 지켜 설치된 전자게시대는 거의 없다.

▲ 서울 은평구 불광역에 설치된 전자게시대.

올해 초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한 서울 은평구의 경우 녹번역과 불광역, 구산역에 설치된 3기의 전자게시대는 모두 교통이 번잡해 신호기도 많은 교차로에 인접해 설치돼 있으며, 높이도 불광역과 녹번역이 6m, 구산역의 전자게시대는 4m에 불과하다.

이 같은 설치방법 위반으로 은평구 3곳에 설치된 전자게시대는 하나 같이 운전자가 신호등의 색상을 알아보기 힘든 불편을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운전자 시야를 방해해 교통사고 발생 등의 위험도 높이고 있다.

전자게시대가 설치되는 장소의 경우도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제16조 제5항)’에는 철도역, 공항, 항만, 버스터미널 및 트럭터미널의 광장과 전통시장 경계선으로부터 100미터 이하의 지역에 설치하도록 돼 있지만 이를 지키는 지자체는 드물다.

서울시는 ‘옥외광고물 등 관리 조례’를 통해 설치 장소를 ‘지하철역’까지 허용하곤 있지만 이 경우도 ‘지하철역의 광장’에 설치하는 게 정상이어서 인접한 도로에 설치되는 것과는 엄연히 구분된다.

전자게시대의 광고 표출은 9~15초 사이의 정지화면으로만 국한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내 전자게시대의 광고는 5초, 7초, 2초 등 제멋대로 바뀌는 곳이 있을 뿐만 아니라 아예 움직이는 동영상까지 버젓이 표출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전자게시대의 광고 대상의 경우도 관할구역 안에 있는 소상공인·전통시장 홍보(제16조제5항) 등으로 국한하고 있지만 타 지역 소재 업체의 광고가 표시돼 민원의 대상이 되는가 하면 소상공인으로 보기 애매한 기업이나 대형병원 등이 주로 실려 소상공인을 지원하겠다는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받고 있기도 하다.

▲ 서울 은평구 구산역에 설치된 전자게시대.

이런 가운데 행안부가 이달 초 전자게시대를 활용한 소상공인·전통시장의 홍보를 활성화하겠다며 ‘전자게시대 광고 관할구역 확대’를 주 내용으로 하는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해 관련업계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다.

행안부는 동 개정안을 “국무조정실 민관합동규제개혁추진단의 기업애로개선과제 건의를 받아 검토한 끝에 입법예고를 하게 됐다”고 설명하며, “전자게시대가 상권이 겹쳐 관할구역을 나누기 애매한 곳에 설치된 경우가 있어 이를 현실화 할 필요가 있었다며, 지자체와 업계의 의견도 충분히 반영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광판 사업자들을 대표하는 (사)한국전광방송협회는 “현재도 관할구역 광고 표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개정안대로 규제가 완화될 경우 교차로마다 전자게시대가 우후죽순 설치돼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는 입장을 밝혔다.

협회는 또 “개정안은 지자체나 전자게시대 운영사업자의 사업권을 확장시키는 결과로, 불공정한 경쟁구도를 조장, 다량의 민원이 발생할 소지가 크며, 불법광고물 남설시 통제 및 정비가 불가능한 상황에 처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표명했다.

실제로 현재 일반 광고사업자는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제16조)’을 통해 지주를 이용한 광고물에 전광판을 설치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지만 전자게시대의 경우 엄연한 지주이용광고물임에도 지자체가 운영한다는 이유로 규제 없이 설치가 가능해 ‘특혜’라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편 올바른광고문화국민운동본부 최병환 대표는 “전자게시대에 타 지역 소재 업체의 광고가 표출된다는 것은 해당 지역 영세 소상공인의 광고기회를 빼앗는 행위가 된다는 점에서 기초단치단체나 지자체장이 섣불리 규제를 개선해 달라 건의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결국 업체의 로비와 이익을 위해 이번 개정안이 마련됐다고 합리적 의심을 해 볼 수 있는데, 그대로 밀어붙일 경우 상당한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대표는 “행안부는 여러 가지 문제가 많은 이번 개정안을 밀어붙일 일이 아니라 안 그래도 문제점이 많았던 전자게시대의 운영 실상을 먼저 파악해 보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에코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