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석 지음, 작은것이아름답다 펴냄

『사회적 농부』는 우리 농촌 사회의 현실을 들여다보며 오랫동안 사회적 해법을 연구해온 마을연구소 정기석 소장이 2014년과 2016년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농업연수단’의 일원으로 참여해 그곳의 농업 현실과 농부의 삶을 들여다보고, 우리 농업과 농촌공동체의 대안을 찾기 위한 기록이다.

정기석 소장은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농부를 ‘사회적 농부’라고 부른다.

농민은 전체 경제 인구의 2퍼센트 정도지만, 국가의 먹을거리를 책임지고, 국가 식량 주권과 국가기간산업인 농업을 지키는 ‘공익 농부’이며 ‘공공의 농부’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농부의 삶과 생활을 국가와 국민이 함께 돌본다. 농부의 자존감과 자부심을 지켜주며 당당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직불금’ 정책을 통해 지원한다.

그런 뜻에서 사회적 농부는 ‘국가와 정부, 국민들과 함께 농사를 짓는다’고 할 수 있다.

유럽연합은 2003년부터 공동농업정책(CAP)을 통해 직불금 예산을 전체 농정 예산 70퍼센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유기농업, 윤리적 축산, 생태관광 같은 공동 정책을 이어간다.

직불금 정책은 단순히 농사뿐 아니라 문화경관과 생태계 보호, 기후변화에 대응한다. 직불금이 ‘문화경관 직불금’, ‘환경보전 직불금’으로 불리는 이유다.

독일의 농업경영체는 가족농이 90퍼센트를 차지한다. 사회적 농부 대부분은 가족농이다. 국제 경쟁력을 이유로 대농과 기업이 농업을 주도하지 않는다. 나머지 10퍼센트도 가족농들이 모인 생산자조합, 농업협동조합이다.

대부분 가족이 농사의 대를 잇는다. 청소년 때부터 농업학교에서 농업 마이스터 과정을 통해 체계 있는 농업교육을 받고 현장 실습을 한다. 모든 과정을 수료한 뒤 농부자격고시를 합격해야 전문성을 갖춘 사회적 농부 자격을 얻는다.

사회적 농부들은 함께 협동조합을 꾸리고, 법으로 보장한 농민자치기구인 ‘농업회의소’를 이끌어간다.

농업회의소는 농민들이 직접 참여해 운영하는 농민들의 대의기구 역할을 한다. 농지 감소를 막고 난개발을 규제하며 농지 관리도 책임진다. 직업교육과 농업경영에도 참여한다. 정부는 예산을 지원할 뿐 운영은 간섭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농업과 농촌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신뢰, 협동, 연대, 규범, 연결망 같은 사회적 자본과 사회안전망이다. 이것이 자립하고 자급하는 민주적 농촌 시민사회를 이루는 밑바탕이자 원동력이다.

사회적 농부는 서로 협동하고 연대한다. 노동자와 농민, 소비자와 생산자, 상공인과 농민이 서로 상생하는 지역공동체를 만든다. 국가와 정부는 ‘돈 버는 농업’보다 ‘사람 사는 농촌’에 무게를 두고 공동체 농업과 사회적 농업 정책을 만든다.

특히 독일의 사회적 농부는 국민의 별장지기, 국토의 정원사로 불린다. 농부는 지역 순환 농업과 생태 경관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농촌의 자연과 문화경관은 온 국민이 즐기는 공유재다. 농부가 운영하는 농촌관광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휴식이나 치유에 가깝다.

농부는 자연과 농촌의 문화경관을 보존하며 다양한 동식물을 보존해 생태적 휴식 공간을 만든다. 또한 새벽부터 도시의 광장에서 열리는 ‘농민시장’은 사회적 농부와 시민들이 서로 상생하는 공동체 한마당이다. 얼굴 있는 지역 먹을거리, 로컬푸드의 원형을 만들어 가고 있다.

『사회적 농부』는 독일, 오스트리아에서 ‘모두의 농업’을 일구며 ‘모두의 농부’로 사는 사회적 농부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책이다.

‘행복한 사회적 농부’, ‘정의로운 사회적 농정’의 배경과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와 철학, 정책을 아우른다.

사회안전망을 통해 국가와 정부의 지지와 지원을 받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농업과 농촌사회를 통해 우리 농촌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진솔하게 들여다본다.

우리 농민은 농촌의 고령화와 마을과 지역공동체 붕괴, 농사만으로 먹고 살 수 없는 환경,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농업 현실, 불안하고 불안정한 생활환경 속에 내몰려 있다.

글쓴이는 우리 농촌과 농민의 미래는 국가의 미래와 직결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농민 개인에게 맡겨진 문제가 아니라 법, 제도, 정책이라는 노력 이전에 농정을 바라보는 기본 철학과 기초 패러다임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사회적 농부’가 생태적이고 사회적인 농사를 짓고, 사회적인 연대를 통해 ‘먹을거리 정의’를 실현하는 주체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먹을거리 정의’는 누구나 고르게 먹을거리에 접근할 수 있고, 적절하고 지속가능한 먹을거리 연대를 만드는 일이다. 이는 시장성이 아니라 공공성으로 접근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확인한다.

저자는 부록으로 담은 ‘먹을거리 정의와 사회적 농부’에서 "먹을거리 정의는 우리 사회 전체를 가로지르는 문제이며, 이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우리 농촌과 농민에게 놓인 문제를 들여다보고, 사회적 농부를 지지하고 존중하는 사회적 합의와 연대의 그물망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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