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엘라 르 뫼르 지음, 풀빛 펴냄

베트남의 작은 마을, 민 카이로 가는 도로 갓길을 온통 점령하고 있는 것은 알록달록한 쓰레기 더미들이다.

이 더러운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열악한 시설의 재활용 공장으로 이동해 세척 후 열가소성 폴리머와 섞여 녹는 등의 과정을 거쳐 플라스틱 알갱이가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재활용 플라스틱은 다시 ‘깨끗한’ 플라스틱 봉투로 재탄생한다.

이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플라스틱 쓰레기는 한번 생성되면 결코 사라지거나 달라지지 않는 고유의 물질이 되어 버린 듯하다. 친환경 제품이나 분해가 되는 새로운 제품으로 탄생할 것이라 기대했던 우리의 바람과는 다른 모습이다.

『당신의 쓰레기는 재활용되지 않았다』의 저자는 플라스틱을 ‘자연’과 ‘문명’ 사이의 경계를 따라 진화한 합성 재료라고 말한다. 플라스틱은 플라스틱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플라스틱이 야생의 상태로 돌아가면 지구 생태계의 모든 측면에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다.

빙하 코어부터 도심 나뭇가지에 걸린 비닐봉투를 거쳐 바다에 생겨난 플라스틱 섬까지, 없는 곳이 없다. 이는 곧 ‘인류세’의 흔적이기도 하다. 먼 훗날 지구에 찾아온 외계인들이 우리를 플라스틱 종족으로 여길지도 모를 일이다.

2018년, 중국은 플라스틱을 포함한 24종의 유해 물질 수입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수십 년 동안 미국, 일본, 호주, 유럽 등지에서 오는 폐기물 거래의 중심 고리였던 중국의 선언에 갈 곳 잃은 쓰레기 컨테이너들은 베트남의 항구로 몰려 왔다. 쓰레기는 이미 세계화되었고 그 방향은 아래를 향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컨테이너에 실려 온 쓰레기 사이에서 우리가 언젠가 버렸음직한 낯익은 전단지와 한글이 적힌 포장 비닐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일랜드에서 발행한 잡지가 쭈그려 앉아 쓰레기를 분류하는 베트남 농민의 손에 들려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저자가 인터뷰를 진행하며 만난 농민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재활용업에 종사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대대로 농사를 짓던 노인의 땅도 플라스틱 재활용 공장의 부지로 쓰이기 위해 팔려 나갔다. 쓰레기에 점령당한 민 카이 마을 사람들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

온갖 쓰레기들이 쌓여 부패하고, 또 플라스틱 알갱이 가공 과정에서 나오는 오염수는 쌀국수를 만드는 데 쓰던 마을의 강물까지 앗아갔다.

유해 가스가 나오는 공장에서 마스크도 없이 맨몸으로 일하는 주민들의 건강도 불평등의 또 다른 지표다.

쓰레기 더미 위에 거대한 주택을 짓고 부를 늘려 가는 사람들과 농민 사이에는 계급이 존재한다.

저자는 인터뷰마저 비협조적인 기득권층과 쓰레기 더미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주민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끈질기게 담아왔다.

요즘 친환경 제품에 붙는 키워드가 눈에 띈다. ‘100% 생분해되는 비닐봉투’, ‘생분해 수세미’ 등의 제품 소개글에서 완벽히 땅으로 돌아가 분해된다는 설명을 볼 수 있다. 엄청난 혁신이다.

자연적으로 사라진다니! 하지만 조금만 더 살펴보면 이 또한 우리가 친환경적 소비를 했다는 작은 위안을 얻는 정도에 그친다는 걸 알 수 있다.

생분해되려면 일정 조건을 충족한 환경을 만들어야하는데 그런 조건의 매립지는 국내에 없다. 또한 우리가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는 순간, 매립의 여지조차 없이 대부분 소각되고 만다.

그렇다 보니 당신의 친환경 소비는 구매 당시에만 뿌듯함을 선사할 뿐이다. 한참 각광받고 있는 ‘바이오 플라스틱’ 역시 생분해가 어렵다.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인 엘리즈 콘트레르는 ‘오늘날 절반도 안 되는 44퍼센트의 폴리머만이 화학적 특성으로 실제 생분해된다’고 말한다.

재활용 로고로 대표되는 녹색의 순환은 저자의 말대로 ‘신화’에 불과한 것이다. 저자는 민 카이 마을 주민들과의 인터뷰, 그리고 재활용 쓰레기의 생애주기를 추적하면서 순환의 모순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한다.

재활용 로고에 가려진 실제 세계에서는 자본주의와 소비주의, 극단적 자유주의 시스템 속에서 쓰레기통의 비닐봉투를 모으는 베트남 농민의 가난과 불평등만 남아있다고 말이다.

한번 생성된 플라스틱은 결코 친환경적으로 변모할 수 없기에 이제는 재활용이 아닌 재사용에 힘을 쏟아야 할 때다. 끝없이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재활용 로고에 담긴 플라스틱 순환의 고리를 서서히 끊어야 한다.

한편 저자미카엘라 르 뫼르는 인류학 박사로, 엑스-마르세유대학에서 사회학 및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다. 2011년부터 폐기물, 플라스틱 재료, 재활용에 대해 연구 중이며, 이 주제로 2019년에 논문 「플라스틱씨티: 베트남의 삶과 생태학적 변혁에 관한 연구」를 썼다.

플라스틱 재료(특히 가방과 포장)의 생애주기를 추적하며 생태, 도시 및 정치의 중요성에 중심을 두고 있다. 학계 안팎의 다양한 집단에서 활동하며 시청각·사운드 다큐멘터리, 사진, 전시회, 대중 교육 워크숍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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