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5월이면 남루한 일상 속 그나마 누리던 호사가 있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맑고 그윽한 '아카시아 향'을 맡는 일이었지요. 온 세상에 향수를 뿌려놓은 듯 천지에 진동하던 아카시아 향은 도시생활의 찌든 마음을 잠시나마 잊게해 준 '자연 청량제'와 다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올 5월은 아카시아 향을 맡을 수가 없습니다. 벌써 5월 하순으로 치닫고 있지만 감감무소식입니다. 마법이 풀려버리기라도 한 것일까요? 동네 야산과 길가, 밭둑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아카시아나무'는 사실 정확한 명칭이 '아까시나무'입니다. 아카시아나무는 열대성으로 아프리카가 원산지어서, 우리나라 같은 온대지방에선 살 수가 없습니다. 반면 아까시나무는 멕시코를 포함한 아메리카대륙이 원산지로, 1900년대초 경인선 철도변의 절개지 사방용으로 식재하며 우리나라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러다 해방 후 헐벗은 산, 그것도 산성토양이 섞인 암벽지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수종을 찾던 중 아까시나무가 선택됐고, 6~70년대 집중 조림됐습니다. 번식력이 강하고 빨리 자라는 콩과식물 아까시나무는 이후 1980년대까지만 해도 10대 조림 수종에 포함될 정도로 대접을 받았습니다. 아까시나무 꽃은 유난히 꿀이 많아 그냥 먹어도 됐고, 양봉업자에겐 중요한 밀원수종으로 우리나라 꿀생산량의 70%를 책임졌습니다. 잎은 단백질 함량이 높아 양질의 가축사료로 쓰였습니다. 이 처럼 버릴 것 하나 없던 아까시나무가 갑자기 천대를 받게 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외래 수종인 아까시나무가 우리 자생 수종을 몰아내고 전국의 삼림을 고사시킨다는 잘못된 식물지식이 퍼진 때문입니다. 이후 전국의 지자체와 산림단체가 앞다퉈 아까시나무를 베어내기 시작했고, 끝내 오늘의 이 지경을 맞은 것입니다. 물론 5~60년 정도 밖에 살지 못하는 아까시나무의 수명 문제도 부재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겠지만 이렇게 약속이나 한 듯 한꺼번에 죽어버릴 순 없는 노릇이지요. 분명히 말하지만 아까시나무는 쓰임새 많은 미래의 생명자원입니다. 지리산이나 설악산 울창한 숲에서 아까시나무를 본 적 있나요? 자신이 꼭 필요한 곳에서 자라며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아까시나무였다는 말입니다. 한 해의 반환점을 앞둔 이 즈음, 5월을 도둑맞아 버린 것 같아 섭섭하기 그지 없습니다. 꽃님이 조금 늦는 걸까요? 다시 찾아올까요? ET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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