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상수도사업본부가 24일부터 송파구와 강동구, 하남시 등 30개동에 고도정수처리된 수돗물을 공급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면서 "조류로 인해 발생하는 맛ㆍ냄새 물질과 소독부산물 등 미량유기물질을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어 더 깨끗하고 미네랄이 살아있는 수돗물을 가정에 공급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얼핏 들으면 좋은 일 같은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살짝 언짢아집니다. 마치 수돗물이 '고급 생수'라도 되는 양 홍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고도정수처리된 수돗물을 먹지 못하는 대다수 서울시민들 입장에선 '소외감'을 느낄만한 일이기도 하지요. 고도정수처리시설은 상수원의 부영양화와 수질 악화로 인한 문제를 활성탄과 오존을 이용해 수돗물 특유의 맛과 냄새를 제거하는 시설입니다. 프랑스가 1893년에 이미 오존을 이용한 고도정수처리시설을 도입했으니 역사도 꽤 깊은 편입니다. 현재 프랑스 전역에 700개가 넘는 고도정수처리시설이 갖춰져 있지만 정작 프랑스인들은 수돗물을 잘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프랑스 수돗물엔 석회 성분이 많아 그냥 마시기엔 적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도정수처리된 수돗물이 '전가의 보도'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서울시는 고도정수처리시설을 도입하면서 왜 이 처럼 조금 과하다 싶은 홍보를 하는 것일까요? 며칠 전 서울시는 정수장에서 생산한 수돗물이 가정까지 도달해 사용한 양의 비율을 뜻하는 ‘유수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 94.5%를 달성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만큼 수도관 노후 등의 원인으로 새어 나가 낭비되는 물이 줄었다는 뜻이지요.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최종 단계라 할 수 있는 수돗물 품질 개선을 위한 고도정수처리시설 설치에 '올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도정수처리된 수돗물을 서울 시민들이 많이 마셔 줄까요? 현재 서울시민의 수돗물 음용율은 58%입니다. 올 초 서울시가 집계한 수치인데, 끓여 먹거나 정수기를 통하지 않는 '직접음용율'은 2%대로 뚝 떨어지고 맙니다. 왜 안먹을까요? 수돗물이 흘러들어오는 통로, '수도관'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시는 노후수도관을 대부분 교체했다고 합니다. 실제 1만6천km가 넘는 수도관 중 546㎞만 남기고 모두 교체했습니다. 이 마저도 2015년까지 전량 교체한다고 합니다. 문제는, 정부나 지자체가 책임져 주지 않는 '옥내급수관'입니다. 이를테면 아파트 단지 입구까지 이르는 상수도관은 교체하지만, 그 이후부터 각 가정에 공급되는 옥내급수관은 해당 아파트가 관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래된 아파트 수돗물에서 녹물이 나오고 이물질이 섞여 나오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지요. 아무리 고도정수처리 해도 수돗물이 '고급 생수'가 될 수 없는 까닭. 서울 수돗물 '아리수'가 갈 길은 그래서 아직 멀어 보입니다. ET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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