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제289호 - 1982. 11. 4. 지정

▲ 합천 화양리 소나무
합천 회양리의 소나무는 해발 500m 정도 되는 곳에 위치한 화양리 나곡마을의 논 가운데 서 있으며 나이는 5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 17.7m, 둘레 6.15m의 크기로 가지는 2.5∼3.3m 높이에서 갈라져 다시 아래로 처지 듯 발달하였는데 그 모습이 매우 독특하고 아름답다.

나무 껍질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있고 가지가 용처럼 생겼다 하여 구룡목(龜龍木)이라고도 한다.

연안 김씨의 후손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광해군 5년(1613)에 연흥부원군 김제남이 영창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려 한다는 모함을 받고 역적으로 몰려 3족이 멸하게 되자 김제남의 6촌벌 되는 사람이 도망와서 이 나무 밑에 초가를 짓고 살았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마을을 지켜주는 나무로 여기고 오랫동안 보호해 왔으며, 민속적·역사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 합천 묘산면의 소나무
수령(樹齡)은 약 500년이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17.7m, 가슴높이 둘레가 6.15m, 뿌리 근처 둘레가 6.8m, 가지 밑의 높이가 3m이고, 수관폭은 동-서 25.2m, 남-북 24.5m이다. 해발(海拔) 500m 정도의 고지(高地)에서 자라는 고립목(孤立木)이며 마을앞에 있다.

조선조(朝鮮朝)때 김제남(金悌男)(1562-1613)은 그의 딸이 선조의 계비(繼妃)가 됨으로써 영돈녕부사(領敦寧府使)를 제수 받고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으로 봉해졌다. 1613년(광해군 5년)에 이이첨(李爾瞻) 등이 인목왕후(仁穆王后)의 소생인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추대하려 한다는 무고를 받고 사사(賜死)되었다.

김제남(金悌男)이 역적(逆賊)으로 몰려 삼족(三族)이 멸(滅)하게 되자 그의 재종제(再從弟)되는 사람이 화(禍)를 피하여 이 소나무 밑에 초가(草家)를 짓고 살았다고 한다. 김씨(金氏)의 후손(後孫)들과 마을 사람들이 이렇게 전하고 있어 이 나무의 수령(樹齡)을 500년으로 추정(推定)하게 된 것이다.

이 나무는 또 한편 구룡목(龜龍木)이라고도 하는데 수피(樹皮)가 거북이 등같이 갈라지고 수형(樹形)이 용같이 생겼다고 부르는 이름이다. 

▲ 합천 묘산면의 소나무

자료 : 문화재청 천연기념물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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