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제320호 - 1982. 11. 4. 지정

▲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부여 주암리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10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23m, 가슴높이의 둘레는 8.62m로 주암리 마을 뒤쪽에 있다. 백제 성왕 16년(538)에 사비(부여)로 도읍을 옮길 당시 좌평 맹씨(孟氏)가 심었다고 전해진다.

▲ 부여 주암리 은행나무
이 나무는 백제가 망할 때와 신라가 망할 때, 그리고 고려가 망할 때의 3회의 난리 때마다 칡넝쿨이 감아 올라가는 재난을 겪었다고 전해 내려온다. 또한 고려시대 숭각사 주지가 암자를 중수할 때 대들보로 쓰기 위하여 이 은행나무의 큰 가지 하나를 베어 가다가 급사하였으며 사찰도 폐허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마을의 신령한 나무로 보호되어 왔으며, 전염병이 돌 때 이 마을만 화를 면했다하여 영험한 나무라고 믿었다.

부여 주암리의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보살핌과 관심 속에 살아왔으며, 문화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 부여 내산면의 은행나무
수령(樹齡)은 1000여년이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23m, 가슴높이 둘레가 8.62m이다. 주암리(珠岩里) 마을의 뒤 가장자리에서 자라며 신목(神木)으로서 보호하여 왔다.

전설(傳說)에 의하면 백제(百濟) 성왕(聖王) 16년(538) 사비천도를 전후하여 당시(當時)의 좌평(佐平) 맹씨(孟氏)가 심었다고 전하여 온다. 전염병(傳染病)이 돌 때에도 이 마을만은 무사(無事)하였으므로 이 나무가 화를 면하게 하여 주는 영목(靈木)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자료 : 문화재청 천연기념물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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