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연구진,‘무접촉 열처리’로 32㎠ 단결정 금속포일 제조…“세상 바꿀 기술”

국내 연구진이 값싼 상용 다결정 금속 포일로부터 고부가가치의 단결정 금속 포일을 손쉽게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번 연구는 구리(Cu), 니켈(Ni), 코발트(Co), 백금(Pt), 팔라듐(Pd)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금속들까지도 단결정으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획기적 연구로 평가받고 있다.

19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유영민)에 따르면 기초과학연구원(IBS) 다차원 탄소재료 연구단 로드니 루오프 단장(울산과학기술원 특훈교수) 연구팀이 신형준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유원종 성균관대 교수와 공동으로 값싼 상용 다결정 금속 포일로부터 고부가가치의 단결정 금속 포일을 크고 싸게 만들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이번에 ‘무접촉 열처리’라는 새로운 제조 공정을 개발해 기존 보다 1/1,000 낮은 제조비용으로 최대 32㎠의 대면적 단결정 금속 포일을 제조하는 데 성공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IBS(원장 김두철)는 이번 연구 성과가 사이언스(Science, IF 41.058) 온라인 판에 10월 19일 3시(한국시간)에 게재됐다고 밝혔다.

▲ 다결정 금속 포일과 단결정 금속 포일의 비교. 다결정 금속 포일(왼쪽)은 여러 개의 결정립으로 이뤄져 광학 현미경으로 관찰했을 때 표면에 결정립계(결정의 경계)가 관찰된다. 이와 달리 하나의 결정립으로 이뤄진 단결정 금속 포일(오른쪽)은 결정립계가 관찰되지 않는다.
같은 원자로 구성된 소재라도 배열에 따라 특성이 전혀 다른 물질이 된다.

다결정은 원자가 불규칙하게 배열돼 사이사이에 빈 공간이 생긴 상태다. 반면 단결정은 내부의 구성 원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된 순수한 고체 상태다.

단결정 금속은 다결정과 달리 일종의 결함으로 작용하는 결정립계(결정간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아 우수한 특성을 나타낸다. 대표적으로 전기전도도와 열전도도가 우수한 특성이 있다.

일례로, 태양전지의 경우 단결정 실리콘 기판을 사용했을 때의 효율은 25%에 달하지만, 다결정 실리콘 기판을 사용하면 효율은 20%까지 떨어진다. 우수한 특성에도 불구하고 단결정은 비용이 비싸 일부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지금까지는 ‘벌크 결정 성장(bulk crystal growth)’이라는 방식으로 단결정을 제조했다.

벌크 결정 성장은 금속 용융액 안에 작은 단결정 알갱이(씨드)를 넣었다 빼는 과정에서, 그 주변으로 다른 입자들이 규칙적으로 달라붙으며 결정을 성장시키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원자를 규칙적으로 배열하기 까다로워 제조비용이 비싸고, 제조에 소요되는 기간도 길다는 한계가 있다. 단결정 금속의 활발한 상용화를 위해서는 제조비용을 낮추고, 제조 과정의 어려움도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 무접촉 열처리를 이용한 단결정 구리 포일 제작.
연구진은 ‘무접촉 열처리(contact-free annealing)’ 기술을 개발해 단결정 제조에 소요되는 비용을 1000배 이상 절감했다.
 
더욱이 값싼 다결정 금속 포일을 재료로 사용해 고부가가치의 단결정 금속 포일로 만들었다. 일례로 다결정 구리 포일은 1㎠에 38원 수준이지만, 단결정 구리은 18만 원 수준으로 그 가치가 확연히 차이난다.

무접촉 열처리는 말 그대로 다결정 금속 포일과 다른 물질과의 접촉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고온의 열을 가하는 방식이다. 수소로 둘러싸인 공간에 다결정 포일을 공중에 매달아 두고, 금속의 녹는점(구리의 경우 1083℃) 근처의 고온 환경에서 실험이 진행된다.

이때 공중에 매달린 다결정 금속 포일의 여러 결정 중 가장 표면에너지가 낮은 결정이 점점 거대하게 성장한다(colossal grain growth). 표면에너지가 낮다는 것은 내부 원자들이 촘촘하게 배열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결정이 점차 커지다가 결국엔 주변 결정을 흡수하며, 결국엔 하나의 커다란 결정으로 변하는 것이다.

연구진은 결정의 형성과 성장에는 표면에너지가 가장 중요한 인자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분석 결과, 표면에너지를 낮춰 가장 안정적인 상태를 이루는 방향으로 결정이 회전하고, 또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방식으로 연구진은 최대 면적 32㎠의 대면적 단결정 구리 포일을 제조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이 제작한 단결정 구리 포일은 기존 다결정 구리 포일에 비해 전기 저항이 약 7%가량 낮은 우수한 특성을 보였다.

▲ IBS 다차원 탄소재료 연구단 연구진. 뒷줄 오른쪽 두 번째가 로드니 루오프 IBS 다차원 탄소재료 연구단장.
전기 저항이 낮으면 전자의 움직임이 원활해져 전류가 더 잘 흐를 수 있을 뿐더러 전류 흐름이 정확해 오작동도 현저히 줄어든다. 이어 구리뿐 아니라 니켈, 코발트, 백금, 팔라듐 등 다양한 단결정 금속 포일을 대면적으로 제조하는 데도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온도, 주변 대기 환경 등 특정 조건에서 다결정 금속 포일에 열처리를 하는 것만으로 손쉽게 수~수십㎝의 대면적 단결정 금속 포일을 제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 방식으로 제조비용을 대폭 낮춘 단결정 금속 포일은 균일한 표면 특성, 우수한 전기전도도 및 열전도도, 산화와 부식에 강한 내성을 갖는다. 이를 토대로 인쇄회로 기판, 방열판 등 전기전자 제품 분야 전반에 걸쳐 고성능 금속부품소재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뿐 아니라 단결정 금속 포일을 표면 과학, 촉매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 광범위하게 응용할 수도 있다. 단결정 금속을 기판으로 사용하면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단결정 그래핀을 비롯해 다양한 단결정 2차원 재료를 제작할 수 있어 그 잠재적인 응용가치가 매우 큰 기술로 평가된다.

로드니 루오프 단장은 “구리, 니켈, 코발트, 백금 등 다양한 금속들을 손쉽게 단결정으로 전환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며 “실리콘 단결정 성장 기술의 발견이 현재 반도체의 역사를 연 것처럼 다양한 분야에 응용돼 세상을 바꿔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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