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제 59호 - 1962년 12월 3일 지정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불교와 유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서울 문묘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4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26m, 가슴높이 둘레 12.09m에 이르는 웅장한 나무로 가지 발달이 왕성하고, 유주(乳柱)가 잘 발달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은행나무는 성균관대 근처에 있는 문묘(文廟)의 명륜당(明倫堂) 경내에 서 있는데, 임진왜란(1592) 당시 불에 타 없어졌던 문묘를 다시 세울 때(1602)에 함께 심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서울 문묘의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 생물학적·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수령(樹齡)은 400년이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26m, 가슴높이의 둘레가 12.09m이다. 가지의 길이는 동서로 26.8m, 남북으로 27.2m이다.

 
우리나라에서 은행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19점에 이르는데 그 중 이 문묘의 은행나무는 유주(乳柱)를 잘 발달시키고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유주는 일종의 기근(氣根)이라고 믿어지는데 일본에서는 더 흔하고 그 발달도 현저하나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그러하지 못하다.

이 은행나무는 성균관대학교에 가까운 문묘(文廟)의 명륜당(明倫堂) 경내에 자라고 있다. 몸집이 웅장하고 가지의 발달이 왕성해서 넓은 수관폭을 가지고 있다.

명륜당은 선조(宣祖) 39년(1606년)에 세워졌고 그 앞에 서 있는 대성전(大成殿)은 이보다 4년 앞서 세워졌다. 그리고 문묘 자체는 태조 7년(1398년)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까지 기록이 있다.

 
이 은행나무는 화재를 입은 흔적이 있다. 조선 중종 14년(1519)에 대사성 윤탁이 심었다는 설도 있으나 확실하지 않고, 문묘가 창건된 뒤에 심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약 60년전의 기록에 의하면 경학원(經學院) 경내에 4그루의 거대한 은행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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