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록스던 지음, 상추쌈 펴냄

자연의 속도로 살다 간 유쾌한 문명의 파수꾼 ‘진 록스던’을 한국에 소개하는 첫 책이다.

1931년 미국 오하이오의 한 농장에서 태어난 진 록스던은 가톨릭신학대학을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미국학과 민속학 박사 요건을 채웠지만, 교수직을 거부하면서 학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저널리스트로서 시골살이에 관한 글을 쓰며 도시 근교에서 살는 동안 아내와 함께 32에이커짜리 농장을 꾸리며, 자립적 소농으로서 과일과 곡물, 채소를 기르며 가축을 쳤다.

 
땅으로 한 걸음씩 더 나아가며 그 속에 깃드는 행복과 기쁨을 놓치지 않고 마주하는 한 방편으로 꾸준히 글을 썼는데, 2016년 암으로 돌아갈 때까지 농업과 시골 문화를 다룬 여러 에세이와 다양한 농업 길잡이 책을 30권 넘게 펴냈다.

한편 이 책을 펴낸 상추쌈 출판사 대표도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에서  논 600평, 밭 500평을 가꾸는 틈틈이 책을 만는 곳이어서 이목을 끌고 있다.

상추쌈 출판사의 2021년의 첫 책이 12월이 되어서야 나온 『 문명을 지키는 마지막 성벽 위에서』인 셈인데, 올해는 밭에 조그맣게 창고도 직접 올려야 했고, 밭을 조각보처럼 조각조각 나누어 먹고 싶은 온갖 것, 또 새로운 것을 심어 보다 책 출판이 늦어졌다고 설명했다.

상추쌈  출판사의 고백에 따르면 『문명을 지키는 마지막 성벽 위에서』는 그 누구보다 본인들이 읽고 싶어서 낸 책이다.

때문에 마침내 번역자가 보내온 우리말 원고를 받아 든 날! 이어지는 밑줄과 밑줄과 밑줄, 장을 넘길 때마다 감탄 감탄 감탄이 그야말로 셀 수 없이 이어졌다.

이건 그 누구보다 농사를 지으며, 다른 일도 함께 이어가는 우리와 같은 이들에게 가장 잘 들어맞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모처럼 책을 만드는 이로서, 그리고 농사를 업으로 삼고 있는 한 독자로서 아직 녹슬지 않은 ‘촉’이 그 어느 때보다 뿌듯했던 순간이었다는 설명이다.

진 록스던은『문명을 지키는 마지막 성벽 위에서』에서 하루하루 돌보아야 하는 짐승들이 사는 어릿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뭇 생명이 깃든 꼴밭의 풍경을 서정적으로 그린다.

또 농부의 한해살이를 어느새 갈무리하더니만, 숲의 은혜로움을 입으며 사는 삶의 보람과, 히커리너트 파이와, 10분 거리에서 따다가 쪄 먹는 옥수수 맛의 놀라움에 대해 적었다가, 자연과 멀어진 오늘날 생태주의자들의 민낯을, 경직된 유기농업주의자들의 모순을 짚고, 지역 주민들을 무시하며 멋대로 엉터리 결정을 내려 꽂는 책상머리 공무원들을 손가락질했다가, 이내 가르쳐야 할 것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근대 교육을 비판한다.

그랬다가는 다시 쓸만한 농기구는 어떻게 찾고 구하는 건지, 짐승들 겨울 먹이로 쓸 말린 꼴은 어떻게 마련하는 게 좋은지 하는 주제도 아랑곳해 보고, 반골 농부들이 함께 읽으면 좋을 책도 권한다.

결국 그의 글은 땀과 수고, 고생스러움으로만 그려지는 농업에 대한 이미지를 정면으로 뒤집는다.

『문명을 지키는 마지막 성벽 위에서』속에는 아무리 바쁜 중에도 소프트볼 할 시간은 놓치지 않는, 다시 말해 “게으름을 즐길 틈(윤구병)”이 있는 농민의 삶이 정직하게 담겨 있다.

대차대조표에는 잡히지 않는 충만한 기쁨 속에서 놀듯이 일하고 일하듯이 노는 농경 사회의 됨됨이가, 유머가 깃든 진솔한 문장에 기대어 펼쳐진다.

어떤 이야깃거리를 앞에 두고도 두루뭉술하게 뭉개거나 세련되게 포장하지 않고, 비유가 없이는 말하지 않으나, 말하고자 하는 바를 에둘러치는 법 또한 없는, 농민의 힘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는 글이다.

진 록스던은 또 이 종횡무진을 통해 반골 중의 반골이라 할 만한 아미시들, 오하이오에서 평생 함께 살아온 이웃들, 두름성 넘치는 도시 텃밭 농부들, 혁신적인 농업 시장 경제를 열어 가는 도전적인 비정통파 유기 재배자들, 손수 땅을 일구지는 않지만 농촌에 살면서 그 속에 담긴 진정한 아름다움과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다양한 매체로 담아내는 이들에 이르기까지, 존경 어린 눈으로 따뜻하게 바라본다.

그들 모두가 즐거움과 만족을 거두는 자립 농부의 길 위에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힌다.

그리고 뜻있는 도시 소비자들 또한 새롭고 건강한 농업을 여는 중요한 축이라는 점을 놓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문명을 지키는 마지막 성벽 위에서』는 먹을거리라는 '공통분모' 위에 서 있는 모두에게 최선을 다해, 거침없이 말을 거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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