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프 할든 지음, 한문화 펴냄

인류는 거대 자연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1800년대 두 번의 산업혁명을 거치며 조금씩 지구상에서 주연이 될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철, 인, 석탄, 석유, 천연가스와 같은 원소나 에너지를 발견하면서부터다.

사람들은 이 귀한 자원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몰랐고, 그만큼 흥청망청 소비했다.

자연을 통제하고 지구를 정복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며 철도망을 늘리고, 각종 기기를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움직이게 했다.

인류의 삶은 편리해졌고 급속도로 발전했지만, 그만큼 유독 물질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현재 시점에서 환경오염의 원인을 역추적하다 보면 토지, 물, 대기 등 어떤 부문에서든 인류의 이런 얄팍한 의식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생물학(환경 정화) 및 토목공학, 환경공학(환경 보건)을 전공한 롤프 할든 박사는 전 세계가 직면한 지구 오염 문제의 궤적을 책에 낱낱이 소개하고자 했다.

그가 환경 보건, 노출 과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게 된 계기는 ‘학자로서 무엇을 연구해야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와 같은 실존적 의문에서 비롯했지만, 이제는 오염 문제의 과거와 현재를 똑바로 보고 미래를 대비하는 일이 곧 ‘지속 가능한’ 환경 대책을 세울 유일한 방법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더 많은 이들이 환경 문제를 자기 일로 인식하기를 바란다는 간절함을 이 책에 담았다.

『오늘도 플라스틱을 먹었습니다』는 인간이 삶의 편의를 위해 개발한 각종 화학 물질이 어떤 식으로 지구와 인간의 몸을 오염시키는지 그 과정에 주목한 책이다.

매일같이 사용하는 개인 위생용품의 항균 성분, 농업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뿌리는 화학비료, 화재 발생을 낮춘다는 명목으로 온갖 소비재에 들어가는 난연제, 생분해 정책의 실패를 방증하는 플라스틱 등이 언제, 어떤 이유로 만들어졌는지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물질들이 세기에 세기를 거듭하면서 인류에게 어떤 피해를 가져왔는지 과학적으로 추적한다. 그리고 모든 오염 물질이 먹이사슬을 통해 결국 인간의 몸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음을 여러 차례 확인한다.

그래서 『오늘도 플라스틱을 먹었습니다』는 어쩌면 독자들에게 불편한 책일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인류가 오래도록 생존하길 바란다면 이 불편한 질문이 꼭 필요하다고.

살충제 성분의 유독성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 분석해 책을 펴낸 미국의 해양생물학자 레이첼 카슨, 그녀가 생을 마감한 지도 벌써 58년이 지났다.

하지만 그가 책에 서술한 ‘봄이 와도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미래’ 즉, ‘침묵의 봄’은 우리를 여전히 두렵게 하는 재앙 중 하나이며, 이미 많은 부분 현실이 되기도 했다.

1962년, 세상에 『침묵의 봄』을 펴내고 2년 뒤 작고한 레이첼 카슨의 연구 성과나 그녀가 품었던 의구심은 이 책의 저자인 롤프 할든 박사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그 또한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고 창조하는 모든 것들이 결국 먹이사슬을 통해 우리 몸속으로 되돌아온다는 카슨의 의견에 힘을 보탠다.

1962년 레이첼 카슨이 보고한 대표적인 살충제 성분인 디디티는 그 유해성이 인정되어 1972년에 전면 사용을 금지했다.

하지만 우리는 디디티와 분자 구조나 기능, 살충력이 유사한 다른 대체 화합물에 곁을 내준 채 살아가고 있다.

롤프 할든 박사는 『침묵의 봄』 이후로 전혀 달라지지 않은, 잔류 독성 물질이 어떤 형태로 우리 삶에 여전히 진을 치고 있는지 알기 쉽게 설명한다.

카슨이 보고한 헥사클로로펜(비누, 구강 세정제, 여성 질 세정제 등 개인 위생용품에 들어가는 유해 성분) 사용이 금지되자 기업들은 삼염화 방향족 화합물을 다음 대체물로 택했고, 그것마저 사용을 금하자 돌연변이, 피부 트러블, 암을 유발할 위험이 있는 트리클로카반을 항균 성분으로 활용했다.

이런 설명 덕분에 본질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는데, 눈속임만 하는 화합물 남용 문제가 훨씬 더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롤프 할든 박사는 항균 제품 외에도 사람들이 위험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의식주와 관계된 다양한 소비재를 소개한다.

이 소비재에 포함된 특정 화합물이 어떤 식으로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지 설명하는 것이다.

어떨 때는 이 화합물을 마치 과학사를 강의하듯 연도순으로 정리하고, 또 어떨 때는 유해성을 입증할 수치나 과학적 데이터를 중심으로 연구 사례를 풀어낸다.

한 예로 미국화학협회 학술대회에서 롤프 할든 박사 연구팀이 발표한 일회용 콘택트렌즈 사례가 있다.

안경 대신 편리하게 사용하고, 자기 전에 빼 둔 콘택트렌즈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변기나 하수구로 흘러갔을 때, 이 쓰레기는 과연 어떻게 될까?

연구팀은 연간 판매되는 일회용 콘택트렌즈의 양, 버려지는 렌즈의 양을 각각 조사한 뒤 콘택트렌즈가 결국 어떻게 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하수 처리장의 오니(오염물질이 섞인 진흙) 성분을 분석한다.

그 결과, 렌즈는 알갱이 형태로 으스러진 일명 미세 플라스틱 조각으로 바뀌어 환경으로 순환되고 있었다.

미세 플라스틱 조각은 재생 고형물 형태로 농지에 뿌려지기도 하고, 바다로 흘러들어 물고기 몸속에 저장되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는 동물과 인간의 몸으로 흘러든다.

이렇듯 환경과학에 입각한 연구 설계와 데이터 분석, 그에 따른 결과를 좇으며 독성 물질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는 일은 과학의 놀라움을 체감할 수 있는 이 책만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한편 이 책의 저자 롤프 할든(ROLF HALDEN)은 독일 브라운슈바이크공과대학교에서 생물학 석사, 미국 미네소타대학교에서 토목공학 석사, 환경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미국에너지연구소 연구원, 존스홉킨스대학교 환경보건학과 조교수로 근무했으며, 지금은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교 환경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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