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용 지음, 뿌리와이파리 펴냄

작년 9월 24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후정의행진’이 있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8년에 1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기후행진이 있은 지 4년 만이었다. 약 3만 5000명이 모였으니 4년 만에 30배가 넘는 사람들이 모인 셈이다.

그 지속적인 행진으로서 더 많은 사람들이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해 동의하고 함께 행동에 나설 2023년 4·14 기후정의파업은 ‘함께 살기 위해 멈춰!’를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우리의 삶을 지키는 파업을 결의한다.

자본에 의한 ‘생태 학살’을 더이상 방관할 수 없어 하루 일터와 일상을 멈추고자 하는 움직임은, 기후위기를 넘어 기후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더욱 강한 의지다.

과학 전문 저술가이자 현재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지구환경에너지위원회 부위원장이기도 한 저자 박재용은 이 책 『녹색성장 말고 기후정의』에서 소비를 줄여 생산을 줄이는, 더이상 자본에 끌려가지 않는, 기후위기를 기후정의로 바꾸는 미래를 제안한다.

지금은 기후위기의 시대이자 기후 불평등의 시대다. 단순하게 소득 수준에 따라 나타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만 봐도 실감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2019년 기준 하위 50%는 평균 7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다.

상위 1%의 180톤에 비하면 약 26분의 1 수준이다. 이처럼 기후위기는 우리를 더욱더 나누고 차별을 더 크게 한다.

기후위기를 일으키는 온실가스의 과잉 배출은 우리 모두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자들의 호화로운 삶을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기후의 과학이나 재생에너지 기술이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의 부정의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후 기술에 대한 낙관주의를 비판하고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과 그 과정의 정의로움에 대해 서술한다.

특히 기후정의로 가는 길을 다른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 사회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사례로 제시한 것은 이 책의 또다른 장점이다.

택배 노동자 진수 씨와 만두 가게 사장님 희순 씨, 수많은 필수 노동자와 돌봄 노동자가 등장한다.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화력발전소의 노동자들과 탄광 노동자들도 등장한다.

또한 친환경 마크가 붙어 있는 화장품이나 세제, 비누를 파는 기업, ‘ESG경영’을 내세우고 ‘탄소중립 석유’를 파는 기업, ‘녹색기업’으로 지정된 화력발전소, 공정무역·유기농·친환경 먹을거리나 입을거리 제품을 만들어내는 수많은 국내 기업들이 등장한다.

기업은 스스로 생산량을 줄이지 않는다. 정부 정책도 마찬가지다. 허울 좋은 ‘녹색성장’ 또는 지속가능성에 편승한 ‘그린워싱’과 구별되는, 제대로 된 노동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정의로운 전환’이야말로 기후 불평등 시대에 가장 진지하게 모색할 주제임을 강조하는 이유다.

미국의 노동운동가 토니 마조치는 ‘정의로운 전환’ 개념을 창안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노동자는 환경을 보호하지 않으면 내일 죽지만, 일자리를 잃으면 오늘 죽는다.”

더이상 경제성장을 목표로 하지 않는 나라, 경제규모를 키우는 대신 공동체와 개인의 행복이 우선시되는 나라를 만들기란 쉽지 않다.

이 굳건한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바꾸지 않고서는 ‘탈성장degrowth’은 불가능한 것이다. 결국 탈성장은 자연에서의 삶, 소박하고 소비를 줄이는 삶, 힐링을 주는 삶이 아니라 체제를 전환하는 가장 불온한 말이자 행동인 셈이다.

탈성장 운동의 상징은 달팽이다. 코끼리를 날씬하게 하는 ‘녹색성장’ 말고 ‘탈성장’의 달팽이로 바꾸는 것이 목표일 터. 저자는 말한다, ‘기후위기 때문에도, 기후위기가 아니라도’ 지속가능한 유일한 성장은 탈성장뿐이라고.

한편 저자 박재용은 주로 과학과 사회, 과학과 인간이 만나는 경계에 대해 공부하고 글을 쓴다. 저술가이자 커뮤니케이터다. 주로 과학 분야에 대한 책을 쓰고 있지만, 사회의 불평등에 문제의식을 느껴 자료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첫 결실이『불평등한 선진국』이다.

근거를 가지고 글을 써야 망해도 남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자료를 열심히 뒤지고, 통계를 찾아 그 사이의 연관성을 파악하는 것이 자신의 몫이라 여긴다.

안토니오 그람시의“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는 구절을 좋아한다. 개별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신뢰와는 별개로 집단으로서의 인류의 미래에 대해 비관하는 회의주의자다.

저작권자 © 에코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