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지난해부터 추진해 왔던 ‘보행친화도시’로의 구상을 마치고 21일 '보행친화도시 서울 비전'을 발표했다. 올 해부터 '보행친화도시' 사업 추진이 본격 시작되는 것.

박원순 시장은 21일 브리핑을 통해 선진국형 보행 도시로의 전환에 기틀이 될 '보행친화도시 서울 비전'을 발표하고 "보행 환경 및 관련 제도 개선 등을 포함한 10개 사업을 추진해 현재 16%인 보행수단 분담율을 2020년까지 20%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박 시장이 발표한 '보행친화도시 서울 비전'의 핵심은 자동차에 점령된 도로를 시민들이 걷기에 편리한 도로로 되돌려 놓겠다는 것이다.

▲ 종로 감고당길.
서울시는 이에 따라 이번 비전 발표에 앞서 시내 보행환경에 대한 진단을 선행한 결과, 우선적으로 개선해야 할 문제점을 크게 네 가지로 압축했다.

그것은 바로 △횡단보도 부재로 인한 무단횡단 위험, △자동차가 점령한 생활도로, △시내 250여 개소의 육교ㆍ지하보도, △들쑥날쑥한 보도폭 등이다.

실제로 현재 시내 전체 도로의 78%가 12m 미만 생활도로임에도 불구하고 불법 주차 차량이 도로를 꽉 메우고 있어 대부분의 시민들이 생활도로를 걷는데 불편을 겪고 있다.

보도폭을 최소 2.0m 이상 확보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곳곳에 볼라드ㆍ환기구ㆍ가로수가 무질서하게 자리 잡고 있어 실제로 보행자가 체감하는 보도폭의 정도는 매우 좁은 실정이다.

또 당초 교통 흐름을 원활히 하고 보행자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설치한 육교ㆍ지하보도는 지금까지 정책이 사람이 아닌 자동차 중심으로 흘러왔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할 근본적인 방안을 마련하는데 주력해 왔으며, △쾌적하고 △안전하며 △편리하고 △이야기가 있는 거리를 만들기 위한 총 10가지의 단위 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우선 보행자만 다닐 수 있는 '보행전용거리'를 확대 운영한다. 서울시는 보행량ㆍ도로 기능ㆍ교통량 등을 고려해 지역 실정에 맞게 ‘주말형’과 ‘전일형’ 두 가지 형태로 지정해 운영할 계획이다.

지난해 몇 차례 시범운영을 거친 세종로(세종문화회관 앞 광화문 삼거리→세종로 사거리 550m 구간)를 첫 ‘주말형 보행전용거리’로 지정하고, 오는 3월부터 매월 세 번째 일요일로 정례화 한다.

시는 운영 성과를 분석해 하반기부터는 주 1회로, ’14년 이후에는 양방향 전면 실시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할 계획이다.

차가 없는 ‘세종로’에는 재활용 나눔장터ㆍ농산물 직거래 장터․열린 예술 극장은 물론 시민이 참여하는 체험형 문화행사가 펼쳐지게 되며, 시는 내실 있는 콘텐츠 운영을 위해 전문 MP(Management Planner)도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시는 외국인 문화거리 ‘이태원로’․강남스타일의 상징거리인 ‘강남대로’․전통문화 상가 밀집거리인 ‘돈화문로’를  '주말형 보행전용거리'로, 세계음식거리 ‘이태원길’ㆍ패션 거리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ㆍ젊음의 거리인 홍대 앞 ‘어울마당로’를  '전일형 보행전용거리'로 운영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시는 이들 지역의 특성에 맞는 축제 및 행사를 주민 공모 방식으로 꾸려나갈 계획이며, 그 밖에 자치구에 대한 디자인 설계지원과 교통ㆍ안전시설 등 다양한 행정지원, 인센티브 제공 등을 통해 적극적인 참여를 견인할 예정이다.

서울시는 또 오는 2014년까지 '보행친화구역' 5개소를 조성할 계획이다.

보행친화구역은 보도 확장, 안전시설물 설치, 지역 보행로 특화 등 보행환경 개선이 수반된다는 점에서 기존의 거리 형태를 유지하면서 차량만 통제해 운영하는 보행전용거리와 구별된다.

조성 대상은 시내 첫 대중교통전용지구인 ‘연세로’, 역사문화탐방지역인 ‘성북동길’, 보행인구가 많은 ‘강변로(광진구)’ㆍ‘영중로(영등포구)’ㆍ‘대학로’ 등으로 이들 5개소는 지역 특성과 쾌적한 보행로가 결합돼 지역 경쟁력까지 갖추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 서울 연세로.


예컨대 역사화탐방로인 ‘성북길’에 최순우 옛집~서울성곽~서잠단지~이태준가옥~심우장~수연산방으로 이어지는 보행로를 걷기 좋게 정비하고, 보행안내표지판 등을 확충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걷고 싶은 시민들이 모여들어 거리에 활력이 불 것이라는 복안이다.

도로 규정 속도를 하향 조정하고, 어린이 보행안전구역을 새롭게 지정하는 등 안전한 보행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3가지 방안도 추진한다.

우선 보행량이 많고 교통사고 위험이 높은 폭 10m 내외의 생활권 도로에 전국 최초로 '생활권 보행자 우선도로'를 도입한다.

‘생활권 보행자 우선도로’는 통행 우선권이 차가 아닌 보행자에게 있는 도로로서, 차도 대비 보도를 최대한으로 넓히고 차량속도 저감시설, 보행자 우선 표지판, 회전교차로 등을 설치하게 된다. 이 도로에서는 30km/h 이하로 지나가야 한다.

시는 교통사고 위험이 높은 곳, 교통약자 이동이 많은 곳 등 5개 후보지(해방촌길ㆍ국회단지길ㆍ개봉동길ㆍ능동길ㆍ무교동길) 중 2개소를 우선 선정해 올해 시범사업을 거친 뒤에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교통약자인 어린이 보행 안전을 위해 '어린이 보행전용거리'도 운영한다.

어린이 보행전용거리로 지정되면 교통안전 노면표시, CCTV 추가 확충 등 시설 개선뿐만 아니라 등ㆍ하교 시간대에 학교 앞 도로의 차량 통제가 이뤄진다.

서울시는 올해 화계(강북구)ㆍ용마(광진구)ㆍ대광(성북구) 등 10개 초등학교 앞 도로를 시범운영 지역으로 운영할 계획이며, 효과 분석 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아울러 어린이 보행전용거리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아이들이 마음대로 다니는 공간'이라는 의미의 ‘아마존’도 2014년까지 은평ㆍ동대문ㆍ노원ㆍ성북ㆍ구로 5개 구 총 7개소에서 시범 운영한다.

시는 아마존 운영을 희망하는 19개 자치구 현장에 전문가를 파견해 우선 사업 대상지 5개를 선정했으며, 이 중 3개구(구로ㆍ성북ㆍ노원)는 올해, 나머지 2개구(동대문ㆍ은평)는 내년에 시범사업에 들어간다. 내년에는 추가 2개소도 선정해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

아마존은 교통안전지도사 배치는 물론 금연거리 지정, 자율방범순찰대 운영, 혼잡한 학원차량 일원화, CCTV 확대 설치, 양방통행을 일방통행으로 전환 등의 지역 실정에 맞는 개선이 수반돼 어린이 보행 안전뿐만 아니라 각종 범죄로부터 보호하는 공간으로 조성할 방침이다.

4백 여 개소의 학원이 위치한 ‘노원구 은행사거리’는 무질서하게 불법 주차된 학원차량으로부터 어린이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학원버스를 일원화한 공동 셔틀버스를 운행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또 주택가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생활권 이면도로 차량 제한속도 강화'도 추진한다.

이를 위해 편도 1차로는 40km/hㆍ30km/h, 편도 2차로는 60km/hㆍ50km/h로 하향 조정하는 방안을 경찰청과 협의 중이다.

▲ 회전교차로
올해 상반기 10개 도로를 대상으로 우선 추진할 계획이며, 하반기부터는 청계천 등 도심 주요도로를 시범적으로 50km/hㆍ30km/h 하향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향후 종로ㆍ남대문로ㆍ세종로를 대상으로 추가 확대할 예정이다.

이번 '보행친환도시 서울 비전'에는 교통약자가 혼자서도 시내 어디든지 이동할 수 있도록 '교통약자 보행환경 종합 개선'도 포함됐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2014년까지 지하철 역 엘리베이터(794대→826대)와 에스컬레이터(1779대→1852대)를 총 2,678대 설치하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목적지 음성인식 안내서비스’가 지원되는 시내버스 정류소를 400개소로 확대할 계획이다.

또한 시각장애인용 음향신호기 기능을 개선하는 한편 매년 1천 대씩 확대 설치해 나갈 예정이다.
 
아울러 올해 중으로 보행 및 교통안전시설물이 교통약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버스정류소와 지하철역사 시설, 도로 및 보행시설(보도ㆍ횡단보도ㆍ신호등 등)에 ‘교통약자 이동편의시설 기준적합성 심사제도’를 도입할 방침이다.

횡단보도 신호등 녹색시간 연장도 추진한다.

서울시는 경찰과 함께 횡단보도 보행 속도 산정을 위한 협의를 진행 중이며, 어르신과 어린이 등 교통약자의 보행속도에 맞춰 1.0m/s→0.8m/s로 완화할 계획이다.

특히 어르신 이동이 많은 탑골공원과 보라매공원 주변, 어린이 통행이 많은 어린이대공원 등 교통약자 보행밀집지역이 주 대상지다.

도심 내 모든 교차로에 횡단보도가 전면 설치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기도 하다.

이는 교차로에 횡단보도가 없어 보행자들이 우회해야 하는 불편을 해소하고, 육교 등을 건너기 힘든 교통약자의 이동권 또한 보장하기 위함이다.

내년까지 광화문, 안국동, 흥인지문, 시청 앞 교차로 등 도심 내 주요 교차로에 모든 방향으로 횡단보도를 설치하고, 지하보도ㆍ육교 지점에도 횡단보도를 설치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각 교차로의 보행 및 교통량, 도로기능 등을 감안해 대각선 횡단보도, 광폭(40m 이상) 횡단보도, 고원식 횡단보도 등 걸 맞는 유형을 채택해 설치할 예정이다.

이 같은 보행환경 개선과 함께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불어 넣는 작업도 병행한다.
 
보행문화 확산을 위한 도심보행 축제인 '보행친화도시 서울 걷기대회(가칭)'를 개최하는 한편 2015년 서울성곽 유네스코 등재 계획과 병행하여 도심 내 고궁ㆍ쇼핑ㆍ역사문화공간 등 명소를 잇는 도심보행길(프롬나드)도 개발할 계획이다.

▲ 세종로 차없는 거리 행사 모습
‘보행친화도시 서울 걷기대회’는 평소 차로 가득 찬 도심을 보행자가 걸어서 가로지른다는 상징성과 홍보 효과가 큰 구간을 선정하여 오는 4월 또는 9월 중 하루를 ‘보행 및 자전거의 날’로 지정하고 진행할 예정이다.

‘도심보행길’은 서울광장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방향 보행로를 조성하고 주요거점에 보행자 안내판과 이동거리 및 소요시간 이정표, 보행길 안내 유도선도 설치할 계획이다.

서울시는 보행친화도시 기반조성을 위해 보행친화도시 사업 발굴과 정책자문을 위한 '보행친화도시 추진위원회'를 운영해 보행 제도와 문화, 환경 개선에 대해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하고 사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보행권 위상 향상을 위한 ‘보행기본조례’를 제정하고, 대규모 도시계획 사업에 보행환경 개선 관련 사항을 적용하기 위한 ‘보행친화도시 평가시스템’도 마련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박원순 시장은 “이번 비전은 우리가 길을 걸으면서 한번 쯤 불편하거나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됐다”며 “부지불식 자동차에 중독되어 있던 도시 체질을 천천히 바꿔 시민 모두가 걸어서 해결하고, 걷는데서 해답을 찾는, 말 그대로 ‘보행친화도시’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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