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는 2007년 도입한 신화학물질관리제도…“산업계의 경쟁력 약화는 핑계”

지난 3년간 산업계의 반대로 표류하던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법률(화평법)'이 지난 24일 국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신(新)화학물질관리 체계를 기반으로 국제적인 화학물질 규제 수준에 따른 화학산업 등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화평법 제정은 우리나라가 화학물질 위험정보교환 체계를 갖추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 등으로부터 국민의 건강권을 담보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번에 국회 환노위를 통과한 화평법이 애초 정부가 제출한 법안과의 병합심의를 통해 통과한 데다 산업계가 여전히 비용 증대에 따른 부담감을 토로하고 있어 후퇴 내지는 국회 통과 무산이라는 난항을 겪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화평법은 쉽게 말해 하루가 멀다하고 출현하는 모든 화학물질에 대한 위해성 여부를 분석·평가해 정부에 보고·등록하도록 강제하는 법이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들은 작업공정에서 화학물질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고, 화학물질이 함유된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 역시 보다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는 체계가 마련되는 것이다.

유럽연합은 이미 지난 2007년 REACH라는 이름으로 법을 제정ㆍ시행하고 있으며, 터키는 2009년, 중국과 일본은 2010년과 2011년에 각각 제도를 도입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9년 화평법 입법을 추진하기 시작해 2011년 2월 환경부가 입법예고를 했으나 산업계와 당시 지식경제부의 반발에 부닥치며 3년여 간 표류상태에 놓여 있었다.

화평법의 핵심은 현재 국내에 유통되는 화학물질 4만3,000여종 가운데 제대로 안전성이 평가된 것은 15%에 불과하니, 이에 대한 안전성 확인과 평가를 해보겠다는 것이다.

특히 현행 법으로는 안전성 평가 물질이라도 유해성(화학물질이 가지는 고유 독성)에 대한 평가만 이뤄져 외부 노출에 따른 위해성 문제는 전혀 고려되지 않아 이 역시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노출시나리오 작성을 통해 화학물질 제조·수입자와 하위사용자(혼합물제조자, 완제품 가공자 등) 간의 화학물질 '위험 정보교환'(Rick Communication) 쌍방향체계를 마련한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화평법 추진에 대해 경제단체와 화학산업 관련 단체는 여전히 기업경쟁력 저하를 이유로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국민의 건강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안의 제정 목적은 이해하지만, 국내 산업계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너무 급속히 추진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산업계는 화평법의 도입으로 이들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경제적 비용이 2조1,314억~7조6,054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직접비용 추정에 대해 환경부의 경우 982억 ~ 4,429억원으로 잡아 부풀려 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데다, 지난 2007년 EU가 제정한 REACH에 우리나라 수출 기업들의 위반 사례가 단 한건도 보고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산업계의 주장은 기우에 불과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쏠리고 있다.

이에 대해 환경운동연합과 녹색연합, 아이건강국민연대 등 화평법의 조속한 통과를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은 26일 공동성명을 통해 "우리나라가 유럽연합처럼 2007년부터 화평법이 제정돼 있었다면, 352건(사망자 접수는 111건(31.5%))에 달하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와 각종 화학물질 누출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산업계의 경쟁력이라는 핑계로 화평법을 반대하는 것은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것일뿐만 아니라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화학물질 종수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1톤 미만의 기존화학물질이 산업계의 반발로 이번 관리 대상에서 누락돼 보완이 필요하지만 이번 회기에 반드시 화평법이라는 제도를 만들고, 단계적으로 화학물질 관리 수준을 높여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야당 환노위원들 역시 2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화학물질 관련법 개정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며 "법리상 문제점을 심사하는 법사위가 전문성을 갖고 환노위에서 통과시킨 여야 만장일치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는 건 월권이고 위법"이라며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한편 이번에 국회 환노위를 통과한 화평법은 법제사법위원회와 5월 임시국회 전체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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