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제300호 - 1982. 11. 4. 지정

▲ 금릉 조룡리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공자가 제자를 가르친 행단(杏壇)을 염두에 두고 우리나라에서도 옛날 서원이나 향교의 뜰에 많이 심었고, 가을 단풍이 아름답고 비교적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하는 특성이 있어서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이 나무는 마을의 뒤편에 자리한 섬계서원의 뒤뜰 담장의 왼쪽 구석에 있다. 담장 구석에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수관의 대부분이 담장 밖으로 뻗어 있으며, 뿌리도 담장 밖 지면에 많이 노출되어 있으나 보호울타리도 없다.

현재 은행나무 뿌리 근처와 줄기 밑동에서 맹아성 가지들이 무수히 발생해 있는 상태이고, 위쪽의 가지 여기저기에 유주가 길게 발달해 있다.

▲ 금릉 조룡리 은행나무
섬계서원(剡溪書院)은 세종 때의 문신으로 단종복위에 성삼문(成三問)과 함께 관여하였다가 죽은 김문기(金文起)의 제사를 모시는 곳이다. 섬계(剡溪)는 본래 이 마을의 이름이 옛날에 섬계리(剡溪里)였으므로 붙인 이름이지만, 지금은 조룡리(釣龍里)로 바뀌었다고 한다.

1456년 그가 죽은 후 은행나무를 심은 것으로 계산해서 현재 나이를 약 440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릉 조룡리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 문화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 금릉 조룡리 은행나무
수령(樹齡) 420년이라 전하고 있으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24.8m, 가슴높이의 둘레가 12.93m, 뿌리 근처 둘레가 13.36m, 가지 밑 높이가 4m이고, 수관폭은 동-서 16.5m, 남-북 22.2m이다.

섬계서원(剡溪書院)의 뒷모서리에서 자란다. 섬계서원은 1802년에 세웠다. 금녕 김씨(金寧 金氏)의 선조(先祖)인 백촌선생(白村先生)을 기념(記念)하기 위하여 사후(死後)에 세웠으나 20여년전 다시 현재의 모습으로 개축(改築)하였다.

은행나무가 서 있는 바로 옆은 서산 정씨(瑞山 鄭氏)의 종중(宗中) 소유(所有)이므로 타협이 어려워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어렵다고 한다. 섬계(剡溪)란 말은 본시 이 마을의 이름이 섬계리(剡溪里)였으므로 붙인 이름이지만 지금은 조룡리(釣龍里)로 바뀌었다고 한다. 

자료 : 문화재청 천연기념물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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